꽃재교회, 충무공 후손 '독립운동가 이규갑 목사' 기념비 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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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재교회, 충무공 후손 '독립운동가 이규갑 목사' 기념비 제막

  • 2018-02-28 19:00

[앵커]

서울 왕십리 꽃재교회가 3.1절 99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목회자였던 이규갑 목사의 생애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이규갑 목사의 기념비는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명이었던 이필주 목사 기념비 옆에 세워졌습니다.

이승규 기자의 보돕니다.

[리포트]

꽃재교회가 28일 독립운동가 이규갑 목사의 생애와 신앙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9대 손 이규갑 목사는 약관의 나이부터 항일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1906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이규갑은 일제가 고종 황제를 퇴위시키고 한,일협약을 체결하자 학교 강단을 뒤로하고 의병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이후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단으로 돌아간 이규갑은 1910년 항일운동이 적발돼 체포돼 옥고를 치렀고, 석방 후에는 항일 지하조직을 만들어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했습니다.

숱한 옥고와 고문에도 항일운동을 계속한 이규갑은 1922년 미 감리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블리디보스토크와 만주에서 민족계몽과 독립운동에 힘썼습니다.

1927년 해외 망명을 마치고 돌아온 이규갑 목사는 신간회 경동지회를 결성했고, 목회에 전념하면서 민족의식을 일깨웠습니다.

[녹취] 김승태 박사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어린 아이와 아내까지 잃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이런 삶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1929년 이후 신간회 경동지회 설립과 1930년대 그의 목회활동도 일제의 감시라는 큰 제약이 따르긴 했지만, 그것도 민족운동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광복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일원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일조했고, 조선감리회 유지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일제에 의해 훼손된 교회 재건에도 힘썼습니다.

일평생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살았던 이규갑 목사는 생을 마감하는 날 까지 분단된 현실과 동지들의 희생을 아파했습니다.

[내래이션] 이규갑 목사 (1887-1970) 기념비 中
“나는 죄인이다. 평생을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제 영토를 영유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수많은 동지들을 내 손으로 무고하게 희생시켰으니 그런 불충이 없다. 나는 나라에 죄인이다”

꽃재교회는 제14대 담임목회자였던 이규갑 목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습니다.

이규갑 목사 기념비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이필주 목사 기념비 옆에 세워졌습니다.

[녹취] 김성복 목사 / 꽃재교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라를 위해 희생하며 사는 것은 그대로 십자가를 진 삶일 텐데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해야 함을 표시함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 아닌가 너희도 그렇게 살아라 그런 말씀 말입니다.”

이규갑 목사의 생애를 조명하는 세미나와 기념비 제막식에는 교인들과 감리교 서울연회 관계자, 이규갑 목사의 후손들도 참석해 의미를 더했습니다.

CBS뉴스 이승귭니다.


영상취재 최현 최내호
영상편집 서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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