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인권보호 최후의 보루 '영등포산업선교회' 60년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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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인권보호 최후의 보루 '영등포산업선교회' 60년 발자취

  • 2018-10-24 16:51

영등포산업선교회 진방주 총무, "YH무역사건, 야훼사건 통해 군부독재 종식"

엄혹한 유신독재 정부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노동자 인권보호의 최후의 보루가 되었던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오늘 파워인터뷰에선 영등포산업선교회 진방주 총무를 만나 도시산업선교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앞으로의 방향과 과제에 대해 들어본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진방주 총무(우측)가 선교회 내 성문밖교회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 방송 : CBS뉴스 파워인터뷰(CBS TV, 10월 24일(수) 밤 9시 50분)
■ 진행 : 박성석 선임기자
■ 대담 : 진방주 목사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박성석> 안녕하십니까?

◆진방주> 네, 안녕하세요?

◇박성석> 들어오면서 보니까 ‘노동선교의 요람, 민주화운동의 사적지’라는 기념비의 글귀가 좀 눈에 띠던데요. 우선 영등포산업선교회 어떤 기관인지 간략히 좀 설명을 해주시죠.

◆진방주> 한국이 산업화되면서 ‘이제 공장을 비롯한 노동자들에 대한 산업전도가 필요하다’ 이래가지고 저희 영등포산업선교회는 1958년 4월 19일에 영등포지구 산업전도회가 형성이 되면서 시작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공장복음화를 위해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박성석> 1970-80년대 군부독재시절에는 이 도시산업선교에 대한 오해가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도시산업선교회를 줄여서 ‘도산’으로 불리면서 ‘도산이 들어오면 회사가 도산한다’ 이런 어떤 거짓된 얘기도 유포를 시켰고, 용공단체니 좌익 빨갱이 단체니 이러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요. 그런 오해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도시산업선교를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소명과 요청이 있었다고 보시는 거죠?

◆진방주> 네, 노동자들이 전태일 열사도 그렇지만 기계처럼 완전 노예처럼 이렇게 취급당하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도 하나님의 생명을 지닌 고귀한 인간이다’ 그것을 이제 깨닫게 하는 데에 오히려 초점이 맞춰졌다고 할 수 있는 거죠.

◇박성석> 도시산업선교회의 60년 역사 가운데 잊지 못하는 게 1979년 8월에 발생한 YH무역 농성사건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당시에 선교회 총무였던 인명진 목사님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고요. 이 YH사건과 도시산업선교회는 어떤 관계로 연결이 되는 건지, 또 당시 이 사건은 선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굉장히 좀 궁금하거든요?

◆진방주> YH는 이제 가발업체인데, 이제 잘 되다가 사장이 미국으로 가면서 그 공장을 폐쇄를 하게 되거든요. 거기에 공장폐쇄에 맞서서 노동자들이 공장 기숙사에서 농성을 하게 되는데, 청와대건 언론이건 노동부건 다 하소연을 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러한 노동자들에 대해서 이제 목사님들이 같이 찾아가고, 그 아픔을 같이 나누고, 그 문제 해결을 위해서 같이 노력했다는 것밖에 없다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특별히 신민당사로 가게 된 건 기숙사가 경찰의 침탈로 위험하니까 안전한 장소로 이전하면 어떻겠느냐 그래서 결정은 노동조합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의견을 물었던 거죠. 그래서 스스로 이제 그렇게 간 것, 그 이후에 그 아픔을 같이 나눈 것. 그것밖에는 없는 거죠. 그래서 그 이후에 박정희 독재가 끝나고 나서 ‘YH사건이 야훼사건이었다’. 야훼 하나님의 YH라고요. 그래서 야훼사건을 통해서 이 군부독재가 종식이 되었다 이런 말까지 이야기하고 그랬습니다.

◇박성석>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제 도시산업선교회도 변신을 좀 꽤하기도 하고, 당시 IMF 외환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도시 실직자들, 근로자들을 위해서 노숙인 돌봄사역을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업의 형태도 좀 변하기도 했는데요. 어떤 일이 좀 있었나요?

 

◆진방주> 그동안 이제 노동자들 문제에 집중을 했었다면, 우리 사회도 변화되고, IMF 이후에 노숙인 문제가 대두가 되면서 우리 도시사회의 가장 새로운 문제로 노숙인 문제를 선교적으로 접근했다고 할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노숙인들 일시보호센터를 운영하면서, 노숙인들의 자립자활을 위한 사회적 협동조합도 만들어서 노숙인들이 스스로 우리사회의 일원으로 서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고, 또 신자유시대에 있어서 도시민들이 같이 가난한 사람들이 같이 상호협동하면서 상생을 모색하는, 그래서 소비생활 협동조합도 함께 하고 있고, 또 의료소비생활 협동조합도 지역에서 하고 있고, 또 신용협동조합도 같이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협동을 통한 삶의 개선, 또 사랑의 나눔 이러한 사역도 계속 하고 있죠.

◇박성석> 네, 목사님. 60주년을 맞은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 앞으로 나아갈 길은 좀 어떤 길이라고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요?

◆진방주> 그동안 우리 영등포산업선교회가 60년 동안 가장 초점을 맞췄던 건 지극히 작은 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거리에 있는 우리 노숙인들이나 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나 또 이 땅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해고되고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 그들의 소리를 가장 중심에 두고서 그들과 함께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찾아나가는 그러한 속에서 선교활동을 해나간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박성석> 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진방주> 네, 감사합니다.

[영상취재 / 정용현 정선택, 편집 / 전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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