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1년 뒤 '대한독립만세' 외친 배화의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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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1년 뒤 '대한독립만세' 외친 배화의 독립운동가들

  • 2019-02-15 18:32

1920년 3.1절 1주년에 독립만세 나선 배화여학교 학생들
기독교정신과 애국애족 근대교육 영향

1898년 설립된 배화여고. 1915년 세워진 학당(오른쪽)과 1916년 건축한 선교사 사택(왼쪽)이 보인다.

 


1920년 배화여학교 3.1운동 재현학생들 중 지난해 국가보훈처가 6명에 대해 독랍운동 공로를 인정하고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김경화, 박양순, 성혜자, 안희경, 안옥자, 소은명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앵커]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에는 유관순으로 대표되는 어린 학생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

학생들은 주로 자신들이 다니던 학교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에 나섰는데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표적인 기독교 학교였던 배화여학교의 만세운동을 돌아보겠습니다. 천수연 기잡니다.

[기자]

배화여학교는 1898년 미국 남감리교 조세핀 필 캠벨 선교사가 세운 여성교육기관입니다.

배화의 만세운동은 1919년이 아니라 1년 뒤인 1920년 3월 1일 일어났습니다.

당시 많게는 19살, 적게는 15살이었던 배화여학교 소녀들은 3.1운동 1주년을 맞아 학교에서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40여명의 여학생들은 이른 아침 학교 기숙사를 빠져나와 학교 뒷산과 교정에서 태극기를 꺼내들고 만세를 외쳤습니다.

배화의 학생들은 1919년 3.1운동을 준비했지만 정작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화학당에서 등사한 독립선언문을 학교에 숨겨놓고 하루 전 날 밤 시내에 나가 집집마다 독립선언문을 끼워 넣으며 날이 새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거사일인 3월 1일에는 학생들이 일본경찰에 잡혀갈 것을 염려한 교사들로 인해 만세운동에 참여하지 못한 채 3.1운동 1주년을 맞은 겁니다.

1920년 3월 1일 배화여학교 학생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배화여학교 뒷산 필운대.

 


지금은 새 건물에 가려진 학교의 뒷산, 그러나 소녀들의 가슴 뜨거웠던 나라사랑이 표현된 역사의 현장은 지금도 만날 수 있습니다.

[천수연 기자]
"100여 년 전 당시에는 이곳이 배화여학교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을 겁니다. 학생들은 이곳에 올라 1년 전 차마 외치지 못했던 대한독립만세를 비로소 외칠 수 있었습니다."

1년이 지난 뒤에라도 독립만세를 외칠 수 밖에 없었던 학생들의 애국애족 정신은 배화여학교에서 받은 교육과 무관해보이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으로 여성들을 깨우는 근대교육을 목표로 한 캠벨선교사는 여기에 나라 사랑의 정신을 강조했고, 교사들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됐습니다.

[전병식 목사 / 배화여대 교목]
"캠벨 선교사님이 학교를 세웠던 당시의 설립 이념하고 그 뒤에 선생님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남궁억이라든가, 차미리사 선생님 같은 그런 분들이 심어준 애국애족의 정신이 학생들에게 그대로 영향이 가 있었고.."

지난 해 국가보훈처는 1920년 만세운동을 재현한 학생들 가운데 6명의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해 포상했습니다.

박양순, 김경화, 성혜자, 소은명, 안옥자, 안희경이 그들입니다.

거의 100년이 다돼서야 인정받게 된 배화여학교 여학생들의 만세운동은 신앙적, 민족적 근대교육을 제공하고 이를 받아들인 학생들이 함께 이루어낸 독립운동의 역삽니다. CBS 뉴스 천수연입니다.

[영상 최현 편집 전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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