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100년 기독교인 서명자⑥ 박동완 ,이갑성, 이명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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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100년 기독교인 서명자⑥ 박동완 ,이갑성, 이명룡

CBS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기독교인 16명의 삶과 신앙을 특별기획으로 조명합니다.

오늘은 박동완 목사와 이갑성 선생, 이명룡 장로는 유영혁 기자가 소개합니다.

박동완 목사는 3.1 운동 당시 정동제일교회 전도사였습니다.

박동완 전도사는 30대로 정동제일교회 담임이었던 이필주 목사 집에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헸습니다.

[인터뷰]이순자 박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월 27일에 이필주 집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이 결정된 다음에 박동완에게 다시 찾아와서 오늘 낮 12시 이필주 집으로 와라 이렇게 얘기를 해서 자연스럽게 3.1운동에 참여를 하게 됩니다.누구의 권유가 아닌 자발적으로 그렇게 참여한 부분에 대해서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박동완 전도사는 옥중에서 일본 경찰로부터 받은 고문의 후유증을 갖고 있었으나 출소한 뒤에도 언론인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박동완 전도사는 1928년 갑자기 하와이로 떠난 뒤 그곳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활동을 했으나 해방된 고국을 보지 못하고 별세했습니다.

[인터뷰]이순자 박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혼자 있는 하와이에서도 아마 가족이 있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박동완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나라가 광복이 되면 고국으로 돌아오겠다는 생각은 한 것 같은데, 다 아쉽게 광복을 보지 못하고 41년에 돌아가셔서 안타까운 부분들입니다."

이갑성 선생은 엄격한 유교집안에서 자라 세례를 받았다는 이유로 어렸을때 집에서 쫓겨나 서울에서 홀로 생활했습니다.

[인터뷰]윤상림 박사/연세대

"어렸을 때 본인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돼서, 경신학교 출신으로 기독교 교육을 잘 받아왔고, 그리고 세브란스에서도 근무하면서 주변의 인사들, 연동교회 출석하고, 남대문교회, 그 당시 남문밖교회에 출석하면서 주변에 독립운동을 하는 기독교 인사들을 많이 관계를 하고 있었어요"

세브란스병원 약제사로 3.1독립선언 서명자 가운데 가장 젊은측에 속했습니다.

[인터뷰]윤상림 박사/연세대

"박희도 선생이랑 함태영 선생이랑 함께 젊은 친구들을 규합하는 일, 또 너무 앞서 가지 않도록 따로 독립을 운동을 하지 않도록 그 역할을 했던 거죠. 민족대표 16명이라고 정해지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전국에 다녔던 것이 대표적으로 맡은 지역이 삼남지방이라고"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출소한 뒤에도 항일운동을 계속했으며 해방 후 국회의원을 지냈고 광복회 회장 등 독립운동 관련단체에서 활동했습니다.

독립선언 서명자 가운데 가장 늦게까지 생존해 있었으며 1981년 별세했습니다.

평안북도 철산출신의 이명룡 장로는 당시에 성공한 사업가로 이승훈 선생, 양전백 목사 등과 함께 105인 사건에 연두돼 옥고를 치렀습니다.

[인터뷰]박혜진 박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명룡 장로가 그 이전의 105인 사건으로 인해서 감옥 안에서 그 당시에 1년 6개월 동안 재판을 받으면서 죽음을 넘나드는 그런 고문을 당했지 않습니까? 그 이후에 이명룡 장로의 삶이 더욱 더 신앙으로 더 깊이가 있어졌고.이명룡 장로는 사업가였지만 근면했고 평생 농기구와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인터뷰]박혜진 박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 105인 사건 당시에 감옥에 있을 때 기도와 말씀으로 계속 하나님 앞에 매달렸고, 그 이후에 3.1운동으로 투옥이 되었을 때도 성경을 40독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과 그다음에 말씀과 기도생활에 매진하면서 더욱 더 신앙이 깊어졌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명룔 장로는 출옥후에도 정렬적으로 평북노회 활동과 교육, 사업활동을 했습니다.

1947년 가족들과 함께 월남해 남한에서 여생을 마쳤습니다.

[영상취재 이정우, 정용현, 최현 영상편집 전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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