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생이 누군가를 만나 변화하고, 꿈을 키우는 것에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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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생이 누군가를 만나 변화하고, 꿈을 키우는 것에 보람"

  • 2021-01-12 16:33

[미션 인터뷰]이명신 전 월드비전 동해종합사회복지관장
1984년 한국 월드비전 사회복지사 공채 1호
'사랑의 빵', '기아체험 24시'등 프로그램 기획
동해종합사회복지관 반납문제 진행중..."안타까워"
"인생의 마지막 여정은 북한선교가 될 것"

■ 방송 : 강원영동CBS <미션인터뷰>(주일 10:05~10:30)
■ 채널 : 표준 FM 91.5MHz
■ 진행 : 최진성 아나운서
■ 출연 : 이명신 전 월드비전 동해종합사회복지관장

이명신 전 관장(사진=이명신 전 관장 제공)

 

◇ 최진성> 40년 가까이 아이들과 어르신 그리고 지역의 복지사각지대를 찾아 아름다운 사랑을 나눠 오신 분이 있습니다. 지난해 월드비전 동해종합사회복지관장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이명신 전 관장님 모시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이명신> 안녕하세요. 이명신입니다. 제가 1984년부터 도시빈민 지역을 시작으로 전 세계의 어려운 나라 또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좋은 일을 했다기보다 오히려 사랑을 받고 풍성한 삶을 누렸던 은혜 가운데 무사히 정년을 마치고 은퇴를 하고 이제 자유의 몸이 된 이명신입니다.

◇ 최진성> 하하(웃음). 자유인 이시군요. 이제...

◆ 이명신> 네. 너무 좋습니다.

◇ 최진성> 정년 퇴임 일자가 정확히 언제 인거죠?

◆ 이명신> 2020년 12월 31일 자로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 최진성> 정말 2020년 마지막 날에 정년퇴임을... 어떠세요? 자유인이라는 표현으로 느낌이 오기도 하겠지만 여러 가지 감정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떠신지?

◆ 이명신> 네. 그 사회복지 현장실천가로서 살아온 마지막 시간을 동해 지역에서 보냈는데 동해 지역은 아시는 것처럼 인구 10만이 안 되는 중소도시이고 사람들이 참 소박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분들이었어요. 여기서 제가 봉사하고 헌신했다 이런 거창한 수식어보다는 제가 사랑을 많이 받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감사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그래서 제가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다기보다는 받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냥 감사하고 그리고 여기까지 온 것도 정말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고 그래서 지금의 시간들이 참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함께했던 그리고 그 사랑을 나누고 또 교제하고 했던 직원들을 포함한 모든 지역 분들 그리고 동역자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월드비전 활동 모습(사진=이명신 전 관장제공)

 


◇ 최진성> 월드비전 동해시 종합복지관 관장으로 활동 하셨을 때 이야기부터 좀 듣고 싶어요.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들어볼까요.

◆ 이명신> 저희 월드비전이 가장 관심이 많은 대상이 일단 아이들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의 삶을 지금 보다 나은 삶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또 더불어서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독거어르신을 대상으로 하고 또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도 저희가 무시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주로 어린 아이들, 청소년들, 부모님들과 또 장애인 어르신들 그리고 지역 사회 전체가 저희 사업의 대상이었죠.

◇ 최진성>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힘들었던 순간부터 들어보고 싶습니다.

◆ 이명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관장으로 부임한 2002년, 2003년인데요. 초임 기관장이었기 때문에 경험도 많지 않았고 또 나이도 비교적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한 가지 한 가지 일들이 쉽고 편안한 일들은 없었지만 그때 부임하자마자 만나게 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 어머니는 장애가 있으셨고 또 계부, 남동생 둘하고 생활을 했는데 "계부로부터 성추행, 성희롱등 성과 관련된 학대가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지역 목사님으로부터 듣고 그 아이와 보호자를 만나면서 특히 어머니가 계부 편을 들었거든요. "딸이 거짓말하고 있다" 이러면서 결국 문제가 소송까지 가게 되고 제가 그 학생을 집으로 데려가서 보호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정말 방송으로는 다 나누기 힘든 그런 상황들이 있었는데요. 결국 그 학생이 후에 결혼도 하고 아이엄마가 돼서 잘 살고 있어서 감사해요. 혼자 복지관장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보호자들의 협조라든가 지역사회, 병원, 법원, 경찰 이런 공공의 영역까지 서로가 협력해서 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 힘이 너무 부족하고 연약하고 버거웠던 그래서 아주 힘들고 아픈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최진성> 지금의 근황까지 알고 계신 거 보면 그 인연이 쭉 이어져왔다고 볼 수가 있겠네요.

◆ 이명신> 네. 그렇죠. 그 힘든 과정을 통해서 나중에는 그 어머니가 "참 고마웠다. 그때 참 미안했고 그리고 딸을 끝까지 믿어 주고 보살펴 줘서 고맙다"고 말해주었어요. 그 어머니 하고는 좋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 최진성> 또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감사했던 순간이 많을 것 같아요.

◆ 이명신> 너무 많아가지고요. 이 시간에 다 못 할 것 같고 아주 최근에 있었던 일은 동해시에 살고 있는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대학교에 들어가는데 가정적으로는 정말 너무 힘들어요. 어머니, 동생 포함한 세 식구인데 어머니가 질병이 있어서 외부 활동을 거의 못 하셔서 가정에서만 계시고 정부의 지원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어요. 동생도 약간의 장애가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 가운데 이 아이가 너무 반듯하고 멋있게 잘 자라서 과학고등학교까지 들어갔어요. 그런데 지원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 상황에서 다 해 줄 수가 없어서 결국은 중도에 자퇴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그 상황이 물론 본인이 가장 힘들었겠지만 그 과정에서 검정고시도 통과했고요. 그리고 제 은퇴를 며칠 앞둔 시점에 연락이 온 거예요. "이렇게 많이 도와주셔서 제가 국립대학교 기계공학과에 합격을 했습니다"라고요. "정말 중 고등학교 시절에 지원해 주고 또 여러 가지 좋은 기회에 참여시켜줘서 그렇게 도와주셔서 좋은 결과를 얻은것 같다"고... 아 정말 그 아이는 로봇과학자가 꿈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래! 그 꿈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 가. 계속 응원할게" 이렇게 정말 벅차죠. 감사하죠. 한 인생이 누군가를 만나서 변화할 수 있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이 우주가 변화하는 어마어마한 일인 것 같습니다.

◇ 최진성> 동해종합사회복지관 존폐위기도 맞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일이었는지.

◆ 이명신> 제가 월드비전 1984년에 입사 해서 참 자랑스럽고 고맙고 이 모든 게 월드비전 같은 좋은 기관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이런 고백을 수 없이 했어요. 혼자서도, 사람을 만나면서도 행복하고 감사한 나날을 보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위기라고 생각을 하는데 월드비전이 앞으로 후원국의 위상으로 가겠다 라는 대전제를 가지고 지금까지 운영해왔던 종합사회복지관과 장애인복지관을 전면 다 반납하고 사업의 대 방향 전환을 시도 하고 있는 상황인거죠. 수탁기관 기한이 5년이거든요. 이 와중에 '동해 종합사회복지관을 올해 말 반납하겠다 정리하겠다' 이런 입장인데 정말 지역사회에 어떤 욕구가 있고 또 지역사회의 형편이 어떤지, 지역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지역사회에 대한 어떤 이해와 그런 관계없이 그냥 일방적으로 본부의 정책을 그렇게 만들고 정책에 의해서 정리한다는 것을 저는 정말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지역만 특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업을 종결한다, 그 복지관을 반납한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예요. 사회복지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사업의 지속성이예요. 지속 가능성 그러니까 아무리 우리가 10년, 20년 사업을 해 왔다고 하더라도 '이 사업이 앞으로 우리가 철수하고 사업을 종결한 후에 과연 자력이 가능한가' 저는 오늘까지 온 힘을 다 해서 저항을 했고 그런 일로 대립을 했고 지금도 사실 이 문제가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인거예요. 그래서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렇게 지역의 상황과 이해 없이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 그것이 낳는 폐단 이런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너무나 안타까운 안타깝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에요.
월드비전 활동 모습(사진=이명신 전 관장제공)

 


◇ 최진성> 사회복지사를 1984년부터 시작하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사회복지의 길을 시작하셨어요?

◆ 이명신> 그때 저는 진로에 있어 세 분야를 놓고 고민을 했는데요. 하나는 신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또 하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미술 쪽으로 가고 싶었고 하나는 사회복지 였는데 제가 원하는 가고 싶었던 대학에 사회복지학과가 신설 된 거예요. 그래서 눈이 번쩍 뜨였죠 '어?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사회복지학과가 생겼어?' 그래서 이 문제를 교회 대학부에 부목사님이 계셨어요. 그래서 그 목사님께 진학상담을 했죠 . 이렇게 세 영역 "미술과 신학과 사회복지를 하고 싶은데 어디를 갔으면 좋겠느냐"고 여쭤봤는데 그 목사님이 정말 고민없이 "사회복지학과가 맞을 것 같다. 저한테 딱 맞는 옷이다. 그림이야 취미활동으로 하면 되는 거고 신학은 굳이 하지 않아도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다. 사회복지 원하는 대학, 원하는과 공부 했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 듣고 고민하지 않고 사회복지학과 1기로 들어가게 됐어요.

◇ 최진성> 또 한국 월드비전의 사회복지사 채용1호시라구요?

◆ 이명신> 네. 제가 개척하는 은사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월드비전이 그때까지만 해도 외원(外援)단체였기 때문에 외국에서 지원을 받아서 그 예산으로 사회복지를 하는거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주로 고아원 이라든가 재활원, 영아원 이런 시설 중심으로 지원을 했고 또 긴급구호사업, 식량지원 같은 물질지원, 학비지원, 교육 이런 쪽에 사업을 하다 보니까 사회복지사가 없었고 주로 신학을 공부하신 목사님들이 계셨고 외국의 후원자들이 있기 때문에 번역을 해야 돼서 영문과와 신학과 출신들이 주로 주축이 돼 있었죠. 그런 상황에서 저를 사회복지사로 처음 공채를 하면서 개발사업, 사회복지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희 학교로 남학생 채용 요청 공문이 왔어요. 교수님 네 분이 계셨는데 모두 추천서를 써주셨어요. 뭐라고 쓰셨냐하면 '이 여학생은 남학생 10명 이상의 몫을 하는 사람' 이라고요. 그래서 제가 남학생 대신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서 한국 월드비전 사회복지사 1호로 입사하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 최진성> 그때는 빈민지역부터 돌아보셨던 것 같아요.

◆ 이명신> 네. 그때는 FDP(Family Development Project)라고 가정개발사업이라고 불렀어요. 도시빈민 가정 개발사업이라고 해서 서울 지역에서도 몇 개 안 남았던 유명한 그 빈민지역이었죠. 봉천5동에 들어가서 5년 동안 400명의 아동 그리고 가족까지 포함하면 2,000명의 주민들을 섬기는 그런 역할을 했죠. 프로젝트 기간이 5년이었습니다.

 


◇ 최진성> 정말 국내외 가릴 것 없이 다니면서 여러 일들을 하셨는데 아이디어도 굉장히 번뜩였던 것 같아요. 청취자분들도 알만한 사업들도 있는 것 같은데 소개해 주세요 .

◆ 이명신> 그냥 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했기 때문에 도시빈민 지역에서 일할 때도 정말 선배가 한 명도 없었고 매뉴얼도 없었고 지침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맨땅에 헤딩 한다고 할까...그래서 하나 하나 다 만들어가면서 그 일을 했는데 그 일이 끝나고 나서 유학을 가려고 사표를 냈더니 2년이라는 시간을 제시했어요. 왜냐하면 사회복지사가 제가 1호였기 때문에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모금을 시작 해야 한다는 분위기였어요. '언제까지 외원에 의지해서 사업을 할 수 없고 이제 자력으로 모금을 해서 독립하자' 이런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2년동안 모금사업을 해주면 유학을 보내 주겠다. 2년만 와서 본부에 들어와서 모금을 해 달라"고 해서 사표가 반려가 되고 본부에 들어왔는데 저랑 다른 직원 한 명까지 두명이 1년에 30억을 모금 하라고 하는데 거기도 역시 길이 없었던 거예요. 그때 사회복지단체들은 그냥 사회복지사업만 했지 모금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막막했지만 그 직원 한 명하고 둘이서 머리를 맞대면서 이 고민 저 고민 하다가 어느 순간에 탁!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인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머리가 번뜩이는 사람은 결코 아니고요. 사랑의 빵 이미 다른 나라에서 하고 있었는데 그런 사랑의 빵을 도입한 후 변형을 해서 교회와 학교에 저희가 넘버링, 번호까지 다 매겨가면서 배달 지금 같으면 택배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빵 주문 오면 그 번호를 매겨 가지고 배달했던 그래서 사랑의 빵을 통해서 어떻게 보면 한국 역사에 사회복지기관에서 모금을 처음 시작하는 그런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사랑의 빵을 2년 동안 열심히 하고 이제 그러다가 이제 그 다음 1탄이 사랑의 빵이었고 2탄이 기아체험 24시 라는 것을 이것도 역시 뭐 저희가 단독으로 만들어 낸 건 아니고 월드비전 파트너쉽 내에서 다른 나라에서 '40 hour Famine' 이런 이름으로 하고 있던 것을 저희가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고쳐서 기아체험 24시 라는 프로그램을 기획만 해 놓고 2년 후에 유학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 하하(웃음) 기획만 해 놓고 시행 못하고 사표를 내고 나갔던 거죠.

◇ 최진성> 기획한 프로그램이 실행 돼 가는 모습을 보시면 어떠세요?

◆ 이명신> 양 감정이 있는데요. 하나는 대한민국 사회복지기관의 역사에서 모금이라는 영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거죠. 그 전에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든 외국의 지원을 받든 대부분 사회복지기관은 외부로부터의 기금으로 사업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자력으로 스스로 모금해서 필요한 사업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 거죠. 그래서 사회복지기관, 사회복지사도 모금과 사업을 같이 해야 되는 인식이 생겼고 한편으로는 사랑의 빵이 사실 고비용 고노동력을 요구하는 모금도구예요. 그러니까 그걸 배부하는 것도 수거 하는 것도 힘들고 또 저희는 '깡통을 깐다' 라는 표현을 하는데 저금통을 깨는 것도 정말 보통 일이 아니고 은행에서도 잘 안 받아 주려고해요. 동전이 힘만 들잖아요. 그래서 '아 저걸 왜 시작해 가지고 또 후배들을 괴롭히지' 뭐 이런 생각으로 가슴을 쳤던 그런 기억도 가지고 있지만 또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저금하는 습관 또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돕는 훈련이 어릴때부터 이뤄지는 것이 제가 볼 때는 상당히 좋은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최진성> 여러가지 사업들도 하셨지만 '아 이건 해보고 싶었다' 아쉬운 마음은 없으신지?

◆ 이명신> 저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사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주님 앞에 대고 가끔 던지는 말이 있어요. 뭐냐하면 "주님 저 할 만큼 했어요" 이렇게 하나님한테 대든다고 할까, 때를 쓴다 그럴까.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기 때문에 사실 아쉬움은 별로 없습니다. 잘 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지나간 날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또 앞으로 하나님께서 펼치실 일들이 더 기대가 되고 종결은 또 다른 시작의 단추이기 때문에 앞으로 하나님께서 펼치실 일들을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지금도 가슴이 부풀어 있죠.

◇ 최진성>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들어보면서 마치려고 합니다.
이명신 전 관장은 "인생의 마지막은 북한선교가 될 것 같다"며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사진=강원영동CBS)

 


◆ 이명신> 아마 제 인생의 마지막으로 달려가야 될 부분은 북한 선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선교, 통일선교. 통일을 바라봄에 있어서 여러 가지 방법이 논의되고 있지만 저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앞장서서 하셔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깨어있고 북한 주민들을 향해 우리 마음을 열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가 아닌 복음통일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복음 통일과 북한선교를 향해서 마지막 길을 달려 가야 되지 않을까 거기에 대한 꿈을 꾸게 하셨고 그래서 그 일을 지금까지도 준비를 해 오는 시간이었습니다.

◇ 최진성> 새로운 어떤 목표가 있다는 것이 힘을 내게 하는 것 아닐까 싶은데요. 앞으로의 길도 응원 하겠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요. 자유인으로서 삶을 응원합니다.

◆ 이명신>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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