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감리교신학대학교 개교기념 아펜젤러 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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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감리교신학대학교 개교기념 아펜젤러 학술대회

  • 2021-09-06 17:51

한국 최초 목사안수 120주년 기념과 미래 목자상

 

1887년 한국기독교 최초로 신학교육을 시작한 감리교신학대학교(총장 이후정)가 개교 134주년을 맞아 제1회 아펜젤러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인 최초 김창식, 김기범 목사 안수 120주년을 기념하고,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의 정체성과 미래 목자상을 성찰하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학술대회 개회예배에서 이후정 총장은 '민족의 등불을 밝힌 분'이란 제목의 설교를 통해 "김창식과 김기범 두 목사 안수는 한국인에 의한 자립 교회의 시작과 부흥의 전기가 된 사건이며, 동시에 민족적 위기에서 백성을 섬기는 종으로서 목회자의 본이 됐다"고 전했다.

1부 강연은 이덕주 박사(전 감신대 한국교회사)와 서영석 박사(협성대 한국교회사) 두 신학자를 통해 ‘한국인 최조 목사안수의 의미’가 조명되었다.

첫 주제강연에 나선 이덕주 박사는 한국선교 초기에 토착 전도자들에 대한 신학교육과 목사 안수가 이뤄진 배경에는 교회의 양적 부흥과 성장에 비해 감리교 선교사회의 부족한 인력난과 이에 대한 적극적 대처 방안의 일환으로 보았다.

이 같은 배경에서 1887년 가을 배재학당 학생들에게 방과후 성경과 교리공부를 시킨 ‘신학부(theol
ogical department)개설로 감리교신학대학가 출발했다고 한다.

1893년부터는 연회 안에 정규과정을 개설하여 농한기에 전도자 양성수업을 하였고, 이것이 발전하여 ‘신학반’ 혹은 ‘신학회’로 자리 잡았다. 신학회 수업을 받은 전도인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성례 집행 권한은 없지만 설교와 교인 치리를 하는 ‘본처 전도인’(local preacher)과 목회에 전념하는 '순행 전도사'(intinerant preacher)가 되었다. 그리고 목사안수는 기능에 따라 성찬례를 집전 할 수 없는 ‘집사목사’(deacon)와 성찬례를 집전할 수 있는 ‘장로목사’(elder)로 구분했다.

이런 장정규칙에 따라 1901년 첫 목사안수를 받은 김창식과 김기범은 ‘본처 집사목사’(local deacon)였다. 이 교수는 첫 목사 안수를 받은 김창식.김기범 두 목사는 이후 목사의 본으로서 ‘고난의 종’ ‘순종의 종’으로 특징지었다.

1900년대 당시 목사 안수식 모습. 이덕주 교수 제공

 

이어 한국인 최초 목사안수의 역사적 의미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로 김창식과 김기범 두 목사는 감리사의 파송을 받아 임지를 옮기면서 사역한 감리교회의 전형적인 ‘순행 목회자’의 본이 되었다. 둘째는 한국 토착교회 목회자의 지도력에 대한 확증을 의미한다. 셋째는 두 목사 안수를 계기로 한국 개신교회 목사 안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이어서 서영석 박사는 “최초 김창식, 김기범 목사 안수의 의미”로 주제 강연을 했다.

서 교수는 김창식과 김기범의 목회와 선교의 특징은 첫째 열정적인 복음선교자였다는 것이다. 둘째 선교사와 교인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인증을 받은 검증된 전도자 및 지도자로서의 활동했다. 셋째로 고난과 박해를 이겨낸 용기 있는 인물이다.

김창식은 1894년 평양선교 개척과정에서 심한 매질과 배교를 강요당함에도 신앙을 지켰고, 이어진 청일 전쟁 중에도 피난대신 남아서 이웃을 돌보고 교회를 지킴으로 홀의 부인으로부터 “조선의 바울‘이란 칭송을 받았다.

김창식과 김기범은 평생동안 산골과 농촌에 있는 성도들을 방문하고 설교하면서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이로 인해 고난과 박해를 받았다고 전했다.

2부 강연은 ‘목사란 누구인가?’ 주제로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와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기성 총회장), 두 현장 목회자를 통해 ‘목사의 정체성과 뉴노멀 시대 목자상’에 대한 성찰적 메시지가 선포됐다.

‘목사란 누구인가?’ 주제로 온라인 영상을 통해 강연한 유기성 목사는 “목사는 신자들의 만인제사장적 역할을 북돋워주고 유지시켜 주기 위해 세움 받은 것”이며, 먼저는 “예수님을 잘 믿는 성도”여야 한다고 제시했다. 목사의 사역과 역할로 “목사는 말로만 설교하지 말고 말씀을 살아내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목사의 부름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로의 부름”이라 말했다.

끝으로 ‘뉴노멀 시대 목회자상’을 성찰한 지형은 목사는 먼저 목사 직무에 대한 성경의 근거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장 14절) 이 성육신 사건에 근거하여, 말씀이 삶이 되게 하는 일이 목사 직무의 심장으로 제시했다.

지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와 목사는 ‘세계 자체가 목회의 대상’이라는 이 지평을 잃어버렸다"면서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동떨어진 섬처럼 고립돼 있는 현실이 코로나 상황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초기의 한국 교회는 이 땅 전체와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 역사적인 흐름에서 분리돼 있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자기 집단 안에 들어온 사람들만을 위한 닫힌 제도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지 목사는 이어 "한국교회는 일제 강점기 이후 정치 사회적으로 보수나 진보에 끌려가는 종속 변수가 되어 성경에 굳건히 선 자신의 땅을 갖지 못했다"고 전하고 "현재의 당혹스러운 상황을 헤쳐 나가면서 미래를 열어가는 길은 잃어버린 지평과 잃어버린 근원을 되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노멀 시대 목사는 ‘항상 개혁되는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를 중심에 품고 목사의 직무에 헌신하기를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UCLA 한국기독교학 옥성득 교수는 1901년 한국인 최조 목사 안수는 “선교사 교회에서 한국인 교회로 자립 자전 자치하는 첫 걸음이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한다.

특히 평양박해사건 때 사형의 위기에도 믿음을 지킨 김창식 목사의 예는 “강한 믿음, 순회하는 전도 열정, 고난을 견디고 가난과 질병과 더불어 사는 영성이 그의 특징이며. 목회 현장에서 검증되고 신도들의 존경을 받는 자들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하였다.

이번 감신대 학술대회는 한국인 첫 목사 두 분의 삶과 사역을 새롭게 조명하는 기회가 되었고, 더불어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교회와 목회자의 오늘을 성찰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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