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십 평생 깜깜했던 세상 밝아져"…글 배우는 한글학교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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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십 평생 깜깜했던 세상 밝아져"…글 배우는 한글학교 어르신들

  • 2024-05-07 18:25

글 못 읽는 서러움에 펑펑 울기도…"배움의 기쁨 커"


[앵커]
어린 시절에는 가난 때문에, 부모가 된 이후에는 가정을 향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글을 배우지 못한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서울 도림교회는 늦은 나이에 글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어버이날을 앞둔 오늘 공부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어르신들을 만나봤습니다.

한혜인 기잡니다.

7일 서울 영등포구 도림교회 비전한글학교에서 한글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혜인 기자7일 서울 영등포구 도림교회 비전한글학교에서 한글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혜인 기자
[기자]
1938년생 강목단(85) 할머니가 비전한글학교 개나리반에서 쌍기역이 들어간 글자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깍두기, 꽃집과 같은 단어를 반복해 써보며 글을 배우는 기쁨을 느낍니다.

공부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남편의 애정 어린 당부는 연필을 잡게 된 원동력이 됐습니다.

[인터뷰] 강목단(85) 학생 / 비전한글학교
"우리 아저씨가 나보고 (어린 시절) 너무나 공부를 못 한 게 아쉬운 생각이 있어가지고 일 그만하고 공부 좀 하라고 하더라고. 근데 공부를 하는 것도 모르고 돌아가셨어."

도림교회 디아코니아센터가 1989년 개강한 비전한글학교는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지정한 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 운영 기관입니다.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글교육과 초등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교육 과정이 진행됩니다.

[인터뷰] 양혜직 총괄팀장 / 도림교회 디아코니아센터
"초등 과정 1단계 240시간, 2단계 240시간, 3단계 240시간을 이수를 하게 되면 초등학력 이수 자격을 받게 됩니다."

초등 3단계인 백일홍반에서 공부하는 엄기임 할머니는 3년 전만 해도 글자를 읽지 못하는 서러움에 아들 앞에서 펑펑 울던 학생이었습니다.

친한 사람들에게조차 글을 못 읽는다는 사실을 숨기며 살아온 날들은 어느 순간 상처로 돌아왔고,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올 때면 상실감이 컸습니다.

[인터뷰] 엄기임(80) 학생 / 비전한글학교
"가난하니까 그리고 동생이 둘이 있고 오빠가 둘 있는데 가운데 내가 하나예요. 5남매 중에 딸이 하나예요. 딸이 없는 집에 태어나서 귀엽게는 컸는데 학교를 안 보내줬어요. 일 시키고 애기 봐라 그래서 학교를 못 다녔어요."

비전한글학교 벽에는 지난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시가 걸려 있습니다.

'구십 평생 한글을 몰라 답답하게 살았다', '백세까지 공부하련다', '공부라는 것을 해보니 날아갈 듯이 기뻤다', '나는 인생에서 지금이 제일 즐겁다'와 같이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배움에 대한 기쁨이 동시에 묻어납니다.

[인터뷰] 최재혁 목사 / 도림교회 부교역자
"어르신들이 글을 배움을 통하여서 못다 이루신 그 꿈을 이뤄가시는 좋은 계기가 되고 또 좋은 방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생계에 대한 책임감과 가정을 향한 사랑으로 배움은 늘 뒤로 미뤄왔던 학생들은 친구들과 공부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글을 몰라 깜깜했던 학생들의 세상은 아는 글자가 늘어날 때마다 하나씩 불이 켜지며 밝아지고 있습니다.

CBS 뉴스 한혜인입니다.

(영상기자 최내호, 영상편집 김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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