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혼란속에 많은 기독인들이 목숨을 걸고 광주시민들을 살렸습니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생명을 살린 기독교인들의 활동을 송주열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광주에 진입한 계엄군에게 발포명령이 내려졌던 1980년 5월 21일 광주기독병원의 진료기록.
머리에 총격으로 관통상을 입은 희생자가 도착했을때 이미 사망상태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엑스레이 필름에는 복부의 총탄이 선명하게 찍혓습니다.
석가탄신일로 광주시내 모든 종합병원이 문을 닫았지만 진료를 하고 있던 기독병원에는 부상자 126명이 입원했고, 그들 중 중상자 23명이 야간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조상기 부장 / 광주기독병원 순환기내과, 5.18 당시 레지던트
"그 당시에 셀수없이 총상환자들 중에서도 복부 관통상 환자들은 바로바로 수술실에 응급실은 환자들로 가득찼어요. 경한사람과 중한 사람 가려서 경한사람들도 무서워서 빨리 치료해 주라는 말을 못하더라고요."
광주기독병원은 5.18민주화운동때 가장 많은 부상자들을 치료했습니다.
신학대 3학년때 입대해 공수부대로 차출돼 광주진압작전에 참여했던 이경남 일병.
이경남 일병은 광주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지 않았습니다.
계엄군과 광주시민들의 총격전으로 혼란스러웠던 학동 5거리에서 군복을 입은채 부상자를 업고 피신시켰습니다.
[인터뷰] 이경남 목사 / 평택 효덕교회, 당시 11공수특전여단 소속
"밖에서 총격소리가 나고 아비규한이 벌어졌으니까 두려우니까 불 다 끄고 캄캄한데 유일하게 불빛이 비치는 곳이 교회였어요. 들어가보니까 거기에 목사님이 계시고 피난온 학생들 5~6명이 목사님 사저에 숨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학생 내려다주고…."
이 일병은 다음날 부대에 복뒤한 뒤 상관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고, 송정리쪽으로 이동하던 중에는 무반동포 파편에 맞아 중태에 빠졌으나 살아나 지금은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상무대교회 전도사로 사역하던 문용동 전도사는 옛 전남도청 지하실에서 무기관리를 하면서 도청을 중심으로 반경 3km를 날려버릴수 있는 폭약의 뇌관을 제거했습니다.
문용동 전도사는 광주시민은 물론 계엄군의 목숨까지 살렸으나 안타깝게도 4월 27일 도청 진압작전에 나선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졌습니다.
5.18 당시 광주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군인에게 쫒기던 시민들을 숨겨주고, 부상자들을 피신시켜 치료받게 하고, 사망자들의 장례를 도왔습니다.
[인터뷰] 이경남 목사 / 평택 효덕교회, 당시 11공수특전여단 소속
"인간적인 조직이나 국가단체에 소속 멤버이기 전에 내 본질이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CBS뉴스, 송주열입니다.
[영상취재] 최현 [영상편집] 김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