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는 우리 주변에서 이름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이웃을 소개하는 선한이웃 코너를 마련해 방송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제강점기때부터 100년 동안 소외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구세군 서울후생원을 유영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구세군 서울후생원은 1918년 일본인 기업인이 거리의 어린이들을 돌봐주라면 당시돈 6천원을 기부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우리나라의 5번째 어린이양육기관인 서울후생원은 일제 강점기에 이어 한국전쟁, MF 사태 등 시대의 아픔을 가장 먼저 느끼는 곳입니다.
김호규 원장/구세군 서울후생원
"1910년도에 시작했을때 20명 정도, 6.15를 거치면서 그때는 정말 어려웠잖아요 먹고 사는게 전부였어요 여기서도 먹는 것 쟁탈전이 벌어지죠.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꿈을 향해서 달리고 있습니다.
구세군 서울후생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영아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지금은 70명 가까운 원생들이 학교생활과 취미생활 등 가정에서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김예건 금화초 4학년
"진짜 부모님은 아니지만 부모님처럼 잘 대해주시고 보살펴 주셔서 감사하고 또 여기서 살다보니까 친구들이랑 정도들고, 진짜 가족처럼은 아니지만 그대로 친구 동생처럼 잘 지내고 있어요."
서울후생원의 아이들은 방학때 여행을 가기도 하고 해외봉사활동을 떠나 다른 아이들을 돕기도 합니다.
특히 1922년에 결성된 브라스밴드는 원생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 뿐만아니라 꿈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구세군 서울후생원은 다른 양육기관과 마찬가지로 기업과 개인의 후원,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강은세 자원봉사자/구리 마끼에 원장
"봉사를 하라 간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봉사를 하고 나면 제가 더 많은 것을 받고 가는 거예요 아이들이 정말 밝고 감사하는 마음도 아이들이 더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걸 받고 가면 에너지가 더 많이 충전이 되는 것 같아요"
구세군 서울후생원은 기쁨과 꿈, 나눔과 감사, 말씀이 있는 후생원으로 아이들의 육체적인 성장 뿐만아니라 영혼구원을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김호규 원장/구세군 서울후생원
"이 아이들이 고3 졸업하면 퇴소를 하기 때문에 그 너머의 비전까지는 우리가 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비전을 가질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우리 아이들의 영혼까지 함께가는 영혼구원을 이룰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세군 서울후생원에서 양육받는 어린이들이 환경의 차이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기 어럽지만 그 환경을 잘 극복할수 있도록 후생원 안팎의 여러 사람들이 돕고 있습니다.
[자료제공 구세군 서울후생원]
[영상취재 최현 영상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