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성탄을 알리는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활동이 시작됩니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재난을 당한 사람들, 슬픈 성탄을 만난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자선냄비는 우리나라에 1928년에 등장해 올해로 90주년을 맞았습니다.
자선냄비는 가장 오래되고 대표적인 이웃돕기 운동이어서 사회상의 변화까지 감지할수 있는 운동이기도 합니다.
자선냄비의 변화를 보면 안타깝게도 우리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향한 인정이 메말라가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2010년 모금액이 287억원, 2013년에 271억원 이었으나 2014년에 99억원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이후 지난해까지 10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선냄비 변화가 우리 사회의 현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아니지만 변화의 흐름을 살피는데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흐름을 보면 이웃을 도우려는 우리의 의자가 약화되지 않았느냐 하는 판단을 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제규모는 확대되고 있지만 이웃을 위한 모금활동이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만큼 사회가 팍팍해지고 있다는 반증일수도 있습니다.
구세군 자선냄비 외에도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사회단체는 많이있습니다.
정부의 사회안전망도 크게 확대됐습니다.
저소득증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은 크게 늘었습니다.
산업화 이전 시대처럼 우리 주변에 끼니를 떼우지 못하고 배고픔을 견뎌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 여러 사회단체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은 많이 있습니다.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상대적 소외감도 느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얘기입니다.
법에 따라 아주 경직된 구호를 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사람들의 정서적인 또 실질적인 필요를 다 채워줄수는 없습니다.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을 돕는 것은 그들 주변의 개인이나 사회단체의 몫이기도 합니다.
고급음식점에서 연인과 혹은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개인의 즐거움일 수 있지만 예수님과 함께하는 즐거음은 아닐 것입니다.
성탄에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것은 에수님과 함께하는 기쁨이 될수 있습니다.
[영상편집 서원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