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기독교인 16명의 삶과 신앙을 특별기획으로 조명합니다.
오늘은 위대한 부흥사였던 신홍식 목사와 유여대 목사를 유영혁 기자가 소개합니다.
민족대표 33인중 한명이었던 신홍식 목사는 영적인 목회자였고 독립운동가 였으며 저술가이기도 했습니다.
신홍식 목사는 불순한 목적으로 기독교인이 됩니다.
[인터뷰]고성은 목사/홍성 광리교회
"예수교회는 권세가 있어서 토색하기에 기탄이 없다는 문을 듣고, 토색하려고 하는 그러한 불순한 목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겁니다. 0217 "남의 돈이나 물건을 억지로 달라고 요구를 하는 거죠."
신홍식 목사는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으면서 참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평양의 기홀병원에 입원해 있던 이승훈 장로를 만난 것을 계기로 독림선언에 서명하게 됩니다.
[인터뷰]고성은 목사/홍성 광리교회
" 손정도 목사님과 함께 기홀병원에 입원해 있던 남강 이승훈 장로님을 만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신홍식 목사님이 이승훈 장로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이제 민족대표 33인으로 참가하겠다고 하는 의사를 밝히게 되어져요. 그래서 이제 참여를 하게 된 것이고요."
3.1운동 당시신홍식 목사가 담임으로 있던 평양 남산현교회는 평양지역 만세운동을 모의하는 거점 역할을 헸습니다.
신홍식 목사는 독립선언서 서명으로 2년동안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뒤에 놀라운 성령 체험을 하고 자신의 고향이었던 충청도 등지에서 부흥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미국 남감리회와 북 감리회로 나뉘어있던 감라교를 통합한 기독교조선감리회 태동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인터뷰]고성은 목사/홍성 감리교회
"조선남북감리교회연합위원회라고 하는 것이 1927년도에 조직이 되어지는데, 바로 미감리회 목회자 대표로 이 연합위원으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통합의 준비작업에 있어서 큰 역할을 감당했고요."
유여대 목사는 3.1운동 당시 의주 동교회 담임으로 상당한 정치적 식견을 갖고 있었으며 교회에서 지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승훈 장로의 권유로 민족대표로 참여했지만 서울 태화관의 선언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평북의 독립만세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인터뷰]최태육 소장/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민족대표 33인 중에 참석하지 않은, 서울 태화관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은 좀 수동적인 사람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여대 목사님에게는 그런 게
발견되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의주라든지 평북의 독립만세운동을 실질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고, 또 그렇게 리드를 해나가셨습니다."
양실학교를 설립해 여성들을 교육했고 도산 안창호 선생 등이 설립한 민족운동단체인 신민회에도 가입해 105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유여대 목사의 꾸준한 독립운동을 상해임시정부에서도 인정해 임시정부의 정보조직이라 할수 잇는 교통국을 지부를 유 목사가 있는 의주에 설치했습니다.
[인터뷰]최태욱 소장/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실질적으로 따지면 정보국입니다. 정보국 이상의 일을 하는 건데, 국내에 조직원을 파견해서 국내 단체 독립운동단체들을 조직하고, 이 사람들이 기금을 마련해서 보내주면 상해임시정부를 운영하게 되는 일입니다. 바로 유여대 목사님이 3.1만세운동을 했던 의주읍에 교통국 지부가 설립이 됩니다."
유여대 목사가 북쪽 곳곳에서 이끌었던 부흥사경회에는 수백명이 모일 정도로 목회자로서의 큰 역할을 했으며 교육가로서, 민족운동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영상취재 정용현 최현 영상편집 서원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