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기독교인 16명의 삶과 신앙을 특별기획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교회와 기독교지도자들을 따라 만세운동에 참여한 것은 민족사랑 정신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영혁 기자가 보도합니다.
평양성의 옛 모습을 담은 러시아와 일본전쟁 사진첩
미국의 출판사가 발행한 이 사진첩의 평양성사진에는 평양성을 중심으로 남산현교회와 장대현교회가 보입니다.
좌측이 남산현교회 우측이 'ㄱ'자 모양의 장대현교회 입니다.
평양성 앞쪽에 보이는 일본군.
일본군인 수천명이 완전군장을 한 채로 스스럼 없이 대동강을 건너 북쪽으로 행진합니다.
[인터뷰]최태육 사무국장/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수탈이죠. 민족을 잃어버린 허탈감 평양 주민들이 그냥 구경만 하고 있어요. 이 나라가 도대체 누구 나라인지, 평양 감사라든지, 평양의 관공서, 군인들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은 그냥 아무 것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서 있어요 보호받을 곳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교회로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거죠.
조선의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던 이런 상황들을 목격한 조선사람들은 의지할 곳을 찾았고 그 의지할 곳이 교회였다고 역사학자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1907년 평양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대부흥운동은 조선의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입니다.
[인터뷰]이상규 고신대 명예교수
"1904-5년에 러일전쟁을 통해서 러시아 세력을 물리치고 조선에서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합니다. 이때부터 일제가 서서히 한국을 침략해 왔는데, 여기에 대한 민족의식이, 민족위기감, 절대절명의 위기 이런 의식들이 우리 신자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기도하지 못했다 이런 반성이 1907년 부흥에 상당히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죠.
[인터뷰] 윤경로 위원장/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기억기념분과
"100년 전에 예수를 믿던 우리 기독교인들은 유교적인 염치를 아는 그런 기본이 깔린 속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인해서 그것이 도덕성, 윤리성, 그리고 민족에 대한 그런 역사의식 이런 것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이분들이 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이 교세를 확보한다 나의 어떤 개인적인 그런 인기를 영합한다 이런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3.1 운동 당시 기독교인은 20만명 정도로 전체 인구 2천만명의 1%를 조금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의 기독교인들이 천교교와 함께 3.1운동을 계획하고 만세운동을 이끌었고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따라 나섰던 것은 교회와 지도자를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갑니다.
[사진제공 아펜젤러순직기념관]
[영상취재 이정우, 최현 영상편집 서원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