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앞서 소개한 고 문용동, 류동운 두 젊은 신학도들은 마지막까지 518의 현장을 지키다가 끝내 군의 총탄에 숨졌습니다.
엄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못했던 이들의 선택이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천수연 기잡니다.
[기자]
선배의 죽음 앞에 시위대에 참여한 류동운 전도사가 죽기 이틀 전 남긴 쪽집니다.
“한 줌의 재가 된다면 어느 이름 모를 강가에 조용히 뿌려다오”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 전남도청 무기고를 지키던 문용동 전도사는 끝내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비인간적인 현장, 죽을 줄 알면서도 죽음의 자리로 나간 두 청년의 선택은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이었습니다.
[고재길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도라고 하는 자기 정체성을 바탕으로 이웃의 생명을 구하는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문용동은 시민군의 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주신 소명의 터 위에서 행동했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
특히 이들의 삶은 오늘날 교회의 사회참여적 역할을 되새기게 합니다. 두 신학도의 행동은 한국기독교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근대한국사 속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역사신학자인 장신대 이치만 교수는 전통적 유교사회의 붕괴와 일제의 식민지배라는
사회 변화 속에서 한국기독교는 계몽운동, 항일운동을 이끌어 왔음을 상기하면서, 사회의 가치가 궁극적으로 변화하고 위협받을 때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회에 표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역할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치만 교수 /장신대 ]
"우리사회의 가장 궁극적 가치가 훼손되는 상황에서 류동운 열사나 문용동 전도사가 그와 같은 군인들에 대항해서 참여하고 다친 사람들의 그 대열에 동참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해야할 일이었지 않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39주기를 맞는 광주민주화운동의 두 신학도들은 종종 '정교분리'라는 말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한국교회에 사회운동의 기준을 새삼 일깨웁니다. CBS뉴스 천수연입니다.
[영상 정선택 편집 전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