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물리적인 공간의 의미를 뛰어 넘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공유하는 장으로서 공간의 가치가 주목받는 가운데, 도심 속 빈 공간에서 기독교적 의미를 지닌 문화 공유의 장으로 탈바꿈한 곳들이 있어 관심을 끈다.
◇ 한국기독교회관 건물에 들어선 문화공간 '스페이스 코르'지난 1968년 설립 돼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불리며 역사적 의미를 품고 있는 한국기독교회관 건물에 새로운 문화공간이 들어섰다.
다양한 기독교적 사회사업들을 펼치고 있는 재단법인 버켄장학회(이사장 백도웅)에서 버켄문화재단을 통해 지난 5월 조성한 문화 공간 '스페이스 코르'로, 최근 몇 년 동안 비어있던 상업 공간을 카페와 전시공간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서울시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 건물 1층에 위치한 버켄문화재단 '스페이스 코르' 전시 공간.
버켄장학회 주성범 기획실장은 "종로 5가는 예전에는 민주화운동 등으로 굉장히 관심이 집중됐던 곳인데 어느 순간부터 어르신들만 오는 공간이 됐다"며, "종로 5가의 역사와 문화를 젊은 세대에게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가 다같이 모일 수 있는 카페 겸 전시 공간을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버켄장학회는 식음료와 인테리어, 대화 공간 등 공간 자체가 문화를 공유하는 장인 카페와 누구나 참여하며 즐길 수 있는 전시 공간을 통해 세대와 성별, 종교 간 단절을 뛰어 넘어 공감과 소통이 활발히 일어나길 바라고 있다.
또, 카페의 수익금을 장학회의 사회선교사업에 활용하고 있기에 공간 이용을 통한 기부문화 조성 역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주성범 기획실장은 "버켄 장학회에서 탈북학생들을 지원해주는 한편 필리핀 등에서 선교사업도 펼치고 있다"며, "스페이스 코르 공간에서 문화를 향유하면 다른 소외계층에게 또 다른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낡은 고물상 건물이 지역의 기억 품은 복합문화공간으로마을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도 있다.
20여년 전 고물상으로 운영되다 최근에는 비어있던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의 한 건물이 최근 영화 관람 등의 문화 프로그램과 문화 소모임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시네 필' 외경.
서울시 공간 재생 프로그램 지원을 받은 복합문화공간 '카페 시네필'의 공간 활용 기획에 나선 문화콘텐츠 전문가들은 한 장소가 품고 있는 기억의 힘에 주목했다.
카페 시네필의 프로그램 기획을 맡고 있는 최아름 연구원은 "빈 집은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과 주변의 경관, 지역의 상호 관계 속에서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기억들을 계속해서 축적해 왔다"며, "이러한 빈집들이 가지고 있는 장소의 기억을 회복시켜서 문화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카페 시네필이 위치한 동대문구 휘경동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오래된 집과 상가들이 사라져가는 상황인데, 마을의 추억을 재생시킬 수 있는 문화 콘텐츠들을 품은 공간이자 문화 소외계층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이다.
최아름 연구원은 "근처 고가도로나 오래된 가게 옆에 있는 의자들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 계신 것을 보고 왜 여기 나와계시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며, "그분들이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로운데 밖에 나와서 말을 하지 않고 누군가가 얘기하는 걸 듣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대답하셨던 게 기억에 난다"고 말했다.
또, "그런 의자 하나의 공간만 있어도 행복해 하시는 분들에게 시네필과 같은 장소가 있으면 더 의욕을 가지게 하고 생기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누구도 찾지 않았던 장소가 변화하는 모습 역시 누군가에겐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교회가 도시화로 죽어가는 공간에 관심 가져야"카페 시네필의 공간을 기획한 미와십자가교회 오동섭 목사는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공간이 생기는 동시에 죽어가는 공간들도 생기고 있다며, 교회가 이러한 죽어가는 공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동섭 목사는 "죽어가는 공간을 새롭게 구원하듯이 공간을 새롭게 재생해서 그 안에 기독교적인 가치를 담고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일들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지역 주민들이 그 공간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공유하고 변화될 수 있는 계기를 갖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 목사는 또, "가난한 사람들은 개인의 우물을 갖지 못했던 때 초대교회 당시,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집에 우물을 파고, 거기에 사람들이 와서 물을 기르도록 하면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의 역사가 일어났다"며, 기독교적 가치를 가지고 만들어 낸 공간에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찾아와 환대 받고, 그 공간을 향유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선교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복음 전도와 사회 선교 방향에 대한 고민이 늘어나는 이 때, 기독교적 가치를 품은 문화 공간 조성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