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소중한 군선교…저는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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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소중한 군선교…저는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 2022-04-06 17:28

[미션인터뷰] 박희웅 목사(군선교 목회자)
20여년 전 군목으로 사역 시작
위암투병 후 민간인 됐지만 군 선교 이어가
주중 인력사무소, 주말 군부대 사역 병행
"많은 분들이 군선교의 동역자가 되었으면"

■ 방송 : 강원영동CBS <미션인터뷰>(주일 10:05~10:30)
■ 채널 : 표준 FM 91.5MHz, 91.9MHz(속초,고성,동해,삼척)
■ 진행 : 최진성 아나운서
■ 출연 : 박희웅 목사(군선교 목회자)
박희웅 목사. 최진성 아나운서박희웅 목사. 최진성 아나운서
◇ 최진성> 강원도 하면 떠올리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군 부대가 많다는 거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군 장병들. 그 가운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군선교 사역자 분들도 계십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또 격려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군부대원들의 마음을 만지고 또 복음을 전하고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 군 사역을 하고 있는 분을 만나봅니다. 대관령에서 군 사역을 하고 계시는 목사님입니다. 박희웅 목사님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 박희웅> 안녕하세요. 저는 강원도 평창에서 군사역을 하고 있는 박희웅 목사입니다.
 
◇ 최진성> 군부대 사역을 하신 지는 꽤 오래 되셨다고 들었어요.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하셨는지.
 
◆ 박희웅> 저는 길게 보면 태어날 때부터 군선교의 피가 자라난 것 같습니다. 1971년도에 태어났습니다.
 
◇ 최진성> 근데 왜 그때부터 군선교를.
 
◆ 박희웅> 아버지가 71년도에 군인 목사로 임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28년간의 군목 자리를 내려놓은 이후에 제가 그 다음에 다시 군목으로 임관을 했습니다. 그렇게 군목 사역을 하던 중에 하나님이 다시 태어나라는 입장에서 위암이라고 하는 병명을 주셨고 잠시 군목의 자리를 내려놓고 다시 믿음을 가지고 군사역을 민간인 신분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 최진성> 군사역 현장으로 복귀하기 전에 우리나라가 아닌 해외에 또 계셨던 적도 있다고요.
 
◆ 박희웅> 네. 그렇습니다. 필리핀에서 한인교회, 원주민 교회 이렇게 겸해서 섬기고 있었습니다.
 
◇ 최진성> 그러면 그 기간도 사실은 짧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있으셨던 거예요.
 
◆ 박희웅> 6년간의 생활을 하게 되었고요. 안식년을 맞이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선교사의 삶으로 살아가야 할지 하나님이 주시는 또 다른 사명이 있다면 그 길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은 뚜렷하게 저에게 다시 한 번 군선교의 임무를 주셨습니다.

◇ 최진성> 그럼 그렇게 해서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야 되는 상황이었잖아요. 어디로 오셨던 거예요. 그럼 처음에는.
 코로나19 이전 군선교 사역 모습. 박희웅목사 제공코로나19 이전 군선교 사역 모습. 박희웅목사 제공
◆ 박희웅>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갈 때는 많은 짐을 가지고 필리핀으로 갔지만 올 때는 하나님의 명령만, 가방 하나만 들고 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준비했습니다. 경기도 안산에 집을 마련해 주셨는데요. 마침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계획하신 강원도 평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 최진성>  그때 기억이 나세요?
 
◆ 박희웅> 기억이 납니다. 오자마자 동기 목사님이 섬기던 민간 군인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추천을 받아서 사역을 시작을 했고요. 1년 후에 군대 교회는 군인 목사님이 섬겨야 하는데 마침 군인 목사님이 오셔서 그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또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 최진성> 어떤 계획이었나요.
 
◆ 박희웅> 강원도의 한 부대가 있었습니다. 사단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나를 막 찾으셨답니다. 왜냐고 물어봤더니 대관령에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 섬겨달라고 하는 요청이 온 겁니다. 저는 늘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도해 볼게요" 이런 얘기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바로 그냥 바로.
 
◇ 최진성> 그러면 그 대관령 부대로 가셨을 때 교회도 보셨을 거고 그 때 장병들의 모습들도 기억이 나세요?
 
◆ 박희웅> 기억이 납니다. 제일 처음에 교회에 갔는데 4명이 예배 드렸습니다. 그 중 세 명은 찬양대 겸 군종병이었고요. 한 명은 의자에서 찬양을 따라 부르던 친구였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 찬양대원 중 한 명이 엉엉 우는 겁니다. 궁금해서 왜 울었냐고 물어봤더니 "앞에 한 명 밖에 없잖아요. 하나님께 너무 죄송해서요" 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믿음의 눈으로 다시 본당에 가서 믿음의 눈을 열어봐. 여기에 꽉 차 있지 않니? 하나님을 찬양하는 많은 친구들과 예배하는 많은 친구들이 있지 않니 보이니?"라고 건넸고 그렇게 5년을 섬겼습니다.
 
◇ 최진성> 그간의 변화도 있었다고요?
 
◆ 박희웅> 많았습니다. 1년이 지나서 목표를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20명, 40명, 80명 이렇게 채워나가다가 5년이 되니까 80% 이상이 교회를 다녔습니다. 어떤 군종 의무대에서는 군종 중대라고 불렀구요. 수송 부대는 전체가 다 교회 나가는 분위기가 전 부대에 조성되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많은 축복을 주셨고요. 예배 드리는 친구들이 졸 수가 없었습니다. 조는 친구들이 있다면 제가 그 옆에 가서 설교했거든요. 하하(웃음) 그러니까 아이들이 마치 아버지가 온 마음으로 그렇게 서로 반갑게 뛰어나오는 내 자식을 보는 마음으로 함께 그들과 하게 되었습니다.
 
◇ 최진성> 군 장병들과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군선교 사역 모습. 박희웅목사 제공군선교 사역 모습. 박희웅목사 제공
◆ 박희웅> 병사들이 있는 곳에 늘 함께하고 싶었고요. 예배가 끝나면 제일 먼저 아픈 병사들, 또 지난주에는 왔는데 이번 주에는 안 오는 병사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찾아갔습니다. 병사들이 정말 아버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됐구요. 그들의 고민들을 나누게 되었고요. 그리고 좋은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날 찾아와서 자랑도 하고요. 그렇게 마치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처럼 그렇게 참 편안했습니다. 간부들도 마찬가지고 여러 가지 부대에 있는 게 제 행복이었습니다.
 
◇ 최진성> 보통 군 사역을 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생각해 볼 수가 있잖아요. 군종 장교라든지 특정교단에서 파송받는다든지 교단에 관계없이 정말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비량으로 섬김으로 나아가는 군 선교 목회자분들도 계시는데 목사님은 어디에 포함이 되시는 거예요.
 
◆ 박희웅> 저는 자비량 선교사로 이해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최진성> 섬기는 교회 사역도 정신이 없을 것 같은데 그 와중에 건축까지 하셨어요.
 
◆ 박희웅> 예. 그렇습니다. 당시 부대의 한 대대에 찾아가서 병사들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부대 소속이니까 자주 왕래를 했었거든요. 그러던 중에 위병소에 아는 형제를 전도하기 위해서 대화를 나누는데 그 친구가 "목사님, 저도 교회 가고 싶어요" 라고 하는 겁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교회에 주일마다 갈 수 있지 않니?" 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형제가 "목사님이 우리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이곳에 교회를 짓자' 기도하고 먼저 간부식당에서 4명과 함께 예배를 시작한 것이 인원이 늘어서 간부식당 자리가 부족했고 사병식당으로 옮겼지만 그 자리마저도 부족해서 강당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전 병력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남서울교회에서 바자회를 통해서 연대 교회의 리모델링을 해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2013~14년도에 눈이 되게 많이 왔습니다. 교회가 덮일 정도로 왔는데 지붕이 무너지기도 했고요. 물이 많이 새기도 했고요. 교회가 1980년도에 지어진 교회이기 때문에 노후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알고 남서울교회에서 리모델링 비용을 도와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제 기도 제목이 건축이었기 때문에 연대 교회는 하나님께 맡기고 건축 비용으로 돌려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 같습니다. 대대에서도 "여기다가 교회 지어서 뭐 해요" 라고 할 정도로 회의감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렇게 건축이 시작되었고 연대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국방부 예산으로 더 풍성하게 교회를 더 아름답게 완벽하게 하나님이 더 멋지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대대교회는 건축이 시작이 되었고 건축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군 교회 건축 현장. 박희웅목사 제공군 교회 건축 현장. 박희웅목사 제공
◇ 최진성> 물론 지금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눠주셨지만 그 외에도 많이 겪으셨을 것 같아요.  사역을 하시면서 기억나는 순간들도 있으신가요?
 
◆ 박희웅> 군사역을 하면서 상상이 되시는지 모르겠는데 병사들이 200명 이상이 서서 해병대 박수를 쳐가면서 그 젊은 뜨거운 병사들이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모습들이요. 어떤 병사들은 "목사님. 교회 한 번 안 다녔는데 우리 부대 소문을 듣고 예배드리면서 도망간 여자친구를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 한 번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도 응답해 주셨습니다" 라고 할 때 그리고 어떤 병사는 종교가 좀 다른 안식교 목사의 자녀인데 "기독교에 대해서 참 색안경을 끼고 봤지만 이런 예배를 통해서 기독교의 본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라고 간증하는 친구들. 어떤 친구는 의가사 전역이 가능한 희귀병에 있는 형제들도 있었는데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답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 음성을 듣고 '내가 이 군대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 이 희귀병이 나을거야 ' 라는 확신을 가지고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던 친구들도 있었고요. 정말 많은 병사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또 기억나는 어떤 병사는 피아노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피아노 치다가 군종병이 된 친구도 있었습니다. 많이 기억나는 병사들이 있었는데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 최진성> 사고가 난 적도 있으세요?
 
◆ 박희웅> 예. 그렇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경비를 하고 있었는데요. 2교대 하다가 주일 아침에 근무를 마치고 겨울에 한 12월이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살짝 얼은 굽은 도로에서 차가 미끄러져 돌았고 차는 폐차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멀쩡했습니다.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군선교하는 부족한 목사를 천군 천사를 통해서 지켜주고 계시는구나. 내가 이 군선교가 하나님이 날 원하시는 일이구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 최진성> 아까도 말씀해 주셨지만 자비량 사역, 자비량 선교를 하신다…자비량이라고 하는 말은…
 
◆ 박희웅> 스스로 생활비를 지원해가면서 사도 바울같이 천막 짓는 일을 하면서 목회를 하는 목사를 자비량 목사라고 합니다.
 
◇ 최진성> 그러면 주중에는 일도 하시는 거예요. 지금도 하고 계시는 거죠.
 
◆ 박희웅> 예. 그렇습니다. 이 얘기도 하고 싶습니다. 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에서 경비 업무를 했는데 고용형태가 무기계약직으로 바뀌면서 행정 직원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를 할지 경비를 할지. 생활로만 바라보면 경비가 낫지만 저의 선택은 단호했습니다. 목사하겠습니다. 그래서 경비 자리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저에게 또 다른 일을 주셨습니다. 좀 안 맞는 조화지만 직업소개소를 하고 있습니다.
 
◇ 최진성> 직업소개소라고 한다면 현장에서의 일을 연결을 시켜주시는…
 
◆ 박희웅> 네. 그렇습니다.
 
◇ 최진성> 그 일을 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 박희웅> 2016년도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지금 벌써 6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저하고 너무 안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려놓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 최진성> 어떤 부분이 제일 안 맞아요?
 
◆ 박희웅>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고 할까요. 왜냐하면 제가 있는 자리가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불평불만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일이 있고요. 예를 들어서 편한 현장으로 보내고 싶은데 그분이 일을 마치고 오셔서 너무 힘들어 하는 겁니다. 그러면 거기에 대한 불평불만은 오롯이 보낸 사람인 제가 얻게 되는데 그분들이 "목사가 이러면 돼?" 라는 소리를 듣기 싫었습니다.
 
◇ 최진성> 명함에도 보면 앞에는 현재 직업 소개서의 정보가 있지만 뒤에는 목사님으로서의 정보가 있더라고요. 일을 하러 오신 분들은 명함이나 이런 것들을 보셨을 때도 한 번쯤 더 이야기를 하시게 될 것 같은데 어떠세요.
 
◆ 박희웅>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력사무소, 직업소개소가 저의 작은 목회지라고,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회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5년 된 사람들도 있고요. 그분들이 저를 가장 행복하게 할 때가 "이제 나도 교회 가" 라고 할 때였습니다. 정말 인생의 마지막 길을 걷고 있는 많은 분들, 정말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 마지막 선택지가 저와 함께하는 일인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하나님 은혜로 함께 기도하면서 새로운 힘을 얻는 얻어가는 것들이 저에게 있어서는 참 행복입니다.
 
◇ 최진성> 아까 얘기하시기로는 경비 업무를 할 때 행정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되는 그 순간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버리고 다시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군선교의 현장으로 결정을 하신 거잖아요. 자부심, 그 사명감이 정말 크신 것 같아요.
 
◆ 박희웅> 그렇습니다. 군선교는 저에게 있어서 딱 맞는 신발이라고 표현할까요. 가장 편한 옷이라고 할까요. 하나님이 이 일을 하면 '네 삶은 내가 책임질게' 라고 하는 소리가 확성기처럼 들려오는 겁니다. 이 일을 하면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는 모습이 상상 가운데 보입니다. 나를 통해서 이 군선교의 소중함을 전하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그 간절한 마음이 보입니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이 군 선교를 저는 결코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 최진성> 앞으로 사역 가운데 꼭 했으면 또 이뤘으면 하는 일들이 있으면 한 말씀 해주시죠.
 박희웅 목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군선교의 중요한 목적을 전할 수 있는 사역자가 되고 싶다"고 기대를 전했다. 최진성 아나운서박희웅 목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군선교의 중요한 목적을 전할 수 있는 사역자가 되고 싶다"고 기대를 전했다. 최진성 아나운서
◆ 박희웅>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하나님을 목숨 바쳐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내 이웃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하나님이 주신 인력사무소 하나님이 사장이시고 저는 직원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셔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내 이웃을 사랑하며 이것을 통해서 그들이 군선교의 중요한 사실들을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저와 함께하는 많은 분들이 군선교의 동역자가 되어 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방송을 청취하는 많은 분들이 군선교사의 비전을 함께 품고 나아가길 바랍니다.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통해서 바라보는 국방력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북한이라고 하는 나라가 우리를 넘보고 있고요. 또한 많은 강대국들이 우리나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가 군선교의 사명을 통해서 더욱 더 강한 나라 어떤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나라 이 나라를 하나님이 하시는 그런 일에 함께 하기를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 번 전하고 싶습니다.
 
◇ 최진성> 미션 인터뷰 대관령에서 군 사역을 하고 계시는 자비량 선교를 하시는 박희웅 목사님과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 참 귀한 시간 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 박희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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