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5.18 진상규명 시위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한신대학교 신학과 신입생 모집을 2년간 강제로 중지한 사건이 '중대한 인권침해'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진실화해위는 제95차 위원회에서 이 사건을 진실규명으로 결정하고 국가에 대해 사과와 피해 회복 조치 등을 권고했습니다.
한혜인 기잡니다.
1980년 11월 9일 복음신보에 실린 한신대학교 신학과 모집 중지 관련 기사문. 한신대 제공[기자]
한신대학교와 한신대 학생들에 대한 전두환 신군부의 '대학의 자율성' 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중대한 인권 침해로 판단하고 진실규명으로 결정했습니다.
사건은 전두환 신군부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집회와 시위를 금지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5.18 민주화운동이 이어지던 5월 27일 한신대 신학과 2학년 류동운 학생이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숨졌습니다.
한신대 학생들은 10월 8일 이를 추모하는 예배를 드린 후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항의 시위를 벌였습니다.
전두환 신군부는 학교에 나온 학생 전원을 연행했습니다.
146명이 연행됐고, 이 중 8명이 구속되는 등 신군부는 관련 학생들을 형사처벌했습니다.
또, 1981년부터 1982년까지 2년간 한신대 신학과 신입생 모집을 강제로 중지시켰습니다.
한신대는 1980년까지 '한국신학대학'으로 신학과만 있는 서울 소재 단과대학이었습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 한신대에 대한 조치는 당시 국군보안사령부가 작성한 1980년 하반기 학원대책의 '대학 개강 후 최초의 문제 제기 학교'로 '일벌백계 표본적으로 치죄' 방침에 따라 내려졌습니다.
대통령이 엄중 조치를 지시했고, 국군보안사령부, 국무총리, 문교부 등 국가 기관이 총동원해 신학과 신입생 모집 중지를 강제한 겁니다.
한신대는 1981년 갑작스런 캠퍼스 이전으로 경기도 오산의 폐공장 건물을 임시교사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한신대 제공모집중지 조치로 인해 한신대는 1981년부터 1982년까지 신학교육을 임시 편성해 운영했으며 기존의 신학 교육 내용, 방법, 대상, 교과과정 편성 등 자주적 학사 운영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밝혔습니다.
실제로 한신대 81학번 학생들은 신학과가 아닌 철학과로 입학해 폐공장을 빌린 임시교사에서 첫 학기를 보냈고, 철학과목 42학점을 강제로 이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은 전두환 신군부가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해 헌법이 보장한 한신대와 한신대 학생들의 학문의 자유, 교육받을 권리, 교육의 자주성,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국가는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해 발생한 중대한 인권 침해에 대해 한신대와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명예와 피해를 회복시키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와 관련 한신대 강성영 총장은 "불의한 정권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학생 모집을 중지하고, 강의실도 없는 경기 오산에서 수업하라고 한 것은 대학을 강제 이전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진 만큼 이제라도 그간의 상처와 고통을 회복해주는 조치를 기대한다"고 전했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도 입장문을 통해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했던 이들의 빼앗긴 수업권과 신학을 가르치지 못하여 자괴감을 느꼈던 교수권, 교단 목회자 배출이 막혀버렸던 교단 차원의 피해에 대해 정부의 사과와 명예 회복, 피해에 대한 보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CBS 뉴스 한혜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