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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교 아래 터진 만세 물결 107년… 광주, '정광호'라는 독립의 가교를 기억하다

부동교 아래 터진 만세 물결 107년… 광주, '정광호'라는 독립의 가교를 기억하다

제 3회 광주 3· 10독립 만세운동상, 독립운동가 정광호

참석자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 한세민 기자참석자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 한세민 기자1919년 3월 10일, 광주 수피아여학교를 출발해 부동교 아래 작은 장터까지 도도하게 흐르던 만세의 함성이 107년의 시간을 넘어 재현됐다. 지난 6일 오후, 광주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 운동장에서는 '광주 3·10 독립만세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대규모 재현행사가 열렸다.

◆도쿄의 외침을 광주로 옮긴 '독립의 메신저'
올해로 3회째를 맞은 '광주 3·10 독립만세운동상'의 주인공은 독립운동가 정광호 지사(1895~1955)다. 그는 도쿄 2·8 독립선언의 기획자이자, 일제의 감시를 뚫고 선언서를 품에 숨긴 채 귀국해 광주·전남 지역 지도자들에게 전달한 '실질적 도화선'이었다.

3회 '광주 3·10 독립만세운동상'은 정광호 지사에게 수여됐다. 정광호 지사 후손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3회 '광주 3·10 독립만세운동상'은 정광호 지사에게 수여됐다. 정광호 지사 후손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정 지사가 전달한 선언서는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을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한 거사의 뿌리였다. 임시정부 의정원 대의원을 거쳐 해방 후 제3대 광주부윤과 국회의원을 지낸 그의 삶은, 독립 투쟁의 정신을 현대 국가의 기틀로 전환한 선구적인 궤적을 보여준다.

◆수피아와 숭일, 기독교계가 일궈낸 '광주의 정신'
광주 3·10 운동의 역사적 데이터는 이 운동이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민과 학의 유기적 결합이었음을 증명한다. 최흥종, 김마리아 등 지도부의 준비 아래 수피아·숭일학교 교사와 학생,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 직원들이 주축이 되어 일궈낸 이 거사는 호남 전역으로 독립의 불씨를 확산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수피아여고생들과 오방 최흥종 기념관이 거리극 <3·1만세운동의 불씨가 되어>를 펼치고 있다. 한세민수피아여고생들과 오방 최흥종 기념관이 거리극 <3·1만세운동의 불씨가 되어>를 펼치고 있다. 한세민수피아여고생들이 광주 3·10 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한세민수피아여고생들이 광주 3·10 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한세민행사에 참여한 수피아여고와 숭일고 학생들은 시민 거리극 <3·1만세운동의 불씨가 되어>와 만세궐기 퍼포먼스를 통해 100여 년 전 선배들의 분기탱천한 기개를 재현했다. 일제에 의해 팔이 잘리면서도 만세를 멈추지 않았던 윤형숙 열사를 비롯해, 옥고를 치른 103명의 희생은 오늘날 광주 정신의 모토가 되었음을 학생들은 온몸으로 표현했다.

이승준, 한지연, 홍지우 등 학생 대표와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김병내 남구청장, 세 양림교회 목회자 등 기관대표들이 3·10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이승준, 한지연, 홍지우 등 학생 대표와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김병내 남구청장, 세 양림교회 목회자 등 기관대표들이 3·10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양림동 언덕을 메운 400명의 플래시몹과 만세 행진
재현행사의 백미는 수피아여고 운동장을 출발해 양림교회와 3·1만세운동길을 거쳐 양림오거리까지 이어진 만세 행진이었다. 400여 명의 수피아여고 학생들이 참여한 대규모 플래시몹은 과거의 역사를 박제된 기억이 아닌, 살아있는 세대의 문화로 계승하려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광주 3·1운동기념사업회와 남구청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1919년의 외침이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거쳐 1980년 5·18 민중항쟁으로 이어지는 '불의에 저항하는 광주 정신'의 역사적 맥락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