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크리스천 노컷뉴스

교회

권세의 자리에서 '생존의 안전망'으로… 예장합동 광주·전남 5개 노회 신임 리더십의 지향점

권세의 자리에서 '생존의 안전망'으로… 예장합동 광주·전남 5개 노회 신임 리더십의 지향점

빛고을노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빛고을노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광주·전남 지역 5개 노회(광주전남·동광주·빛고을·목포·목포제일)가 4월 봄 정기회를 일제히 개회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출범시켰다. 각기 다른 역사와 규모를 지닌 노회들이지만, 올해 선출된 신임 노회장들의 취임 일성에는 하나의 뚜렷한 공통분모가 관통하고 있었다. 바로 '권위의 탈각'과 '안전망으로서의 노회'다.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위기 속에서, 호남 지역의 개별 교회들은 심각한 생존의 위협을 마주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가 증명하듯 전남과 광주 외곽 지역의 고령화 및 인구 유출은 이미 종교 기관의 자생력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올해 예장합동 소속 지역 노회들은 화려한 성장 지표나 거창한 신규 사업을 내세우는 대신, 소외된 목회자들을 살피고 교단의 헌법적 본질로 돌아가는 '돌봄과 안정'을 택했다.

'직분'은 권세가 아니다: 화려함 대신 본질을 묻다

지난 14일 광주동산교회에서 열린 광주전남노회 제126회 정기회에서 신임 노회장으로 선출된 이한석 목사(광주동산교회)의 취임사는 현재 지역 교계 리더십이 겪고 있는 영적 딜레마를 정확히 짚어냈다.

광주전남노회 신임 노회장 이한석 목사(광주동산교회)가 취임사에서 "직분은 권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세민 기자광주전남노회 신임 노회장 이한석 목사(광주동산교회)가 취임사에서 "직분은 권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세민 기자그는 디모데전서 6장의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삼는 것을 피하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노회장이라고 하는 직책과 직분이 권세가 되지 않고, 이를 가지고 잘 섬기는 것이 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교적 직분이 교권주의적 권력으로 변질되어 온 한국 교회의 뼈아픈 과거를 반성하고, "성도로서 일을 다 마치고 난 뒤 영생을 취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고백은, 리더십의 본질이 지배가 아닌 영적 자기 갱신에 있음을 시사한다.

제117회 목포제일노회 신임 노회장 명재호 목사(목포새순교회) 역시 6일 취임식에서 '공약 없는 리더십'을 선언했다. 그는 "특별한 공약보다는 교회 헌법 제10장 6조에 명시된 노회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섣불린 개혁이나 사업 확장보다는, 노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질서와 공의, 화평'이라는 치리회 본연의 기능에 집중하겠다는 실용주의적 접근이다. 더불어 신학 세미나를 통한 교단 신학의 정체성 확립을 강조하며, 바른 신학 위에서만 건강한 교회가 세워질 수 있음을 역설했다.

각자도생의 시대, 고립된 목회자의 '친구'를 자처하다

동광주노회와 목포노회는 생존의 벼랑 끝에 선 지역 교회들을 위한 구체적인 '관계적 연대'를 약속했다.

동광주노회장으로 선출된 제광온 목사가 인터뷰 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동광주노회장으로 선출된 제광온 목사가 인터뷰 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14일 제126회 정기회에서 동광주노회장으로 선출된 제광온 목사는 노회의 소외 현상을 정면으로 다뤘다. 그는 "올해는 새로운 사업보다 어려운 교회를 살피고, 그곳 목회자들의 목소리를 청취해 애로점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특히 "노회가 몇몇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만족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하겠다"는 발언은, 노회 내 정치적 소외 계층이었던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을 의사결정의 중심부로 끌어안겠다는 선언이다.

9일 제141회 정기회를 연 목포노회의 신임 노회장 정용균 목사(해남월송교회)의 메시지도 결을 같이 한다. 정 목사는 "우리 임원들이 늘 낮은 자세로 여러분 곁에 있겠다. 필요할 때 언제든지 불러주시면 친구와 도움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목회자의 고독과 탈진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상급 기관으로서의 노회가 아니라 정서적·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수평적 안전망'으로 기능하겠다는 의미다.

급변하는 환경 속, 흔들리지 않는 닻을 내리다

빛고을노회장으로 한 회기를 이끌게 된 이건복 목사(열린문교회)가 회무를 진행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빛고을노회장으로 한 회기를 이끌게 된 이건복 목사(열린문교회)가 회무를 진행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안정과 전통의 계승을 통해 불확실성에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돋보였다. 13일 광주서현교회에서 열린 제48회 빛고을노회 정기회에서 신임 노회장에 오른 이건복 목사(열린문교회)는 전임자들의 유산을 수성하는 데 무게를 뒀다. 이 목사는 "특별히 추진할 새로운 사업은 없으며, 그동안 잘 진행되어 온 전통을 승계하고 보완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팬데믹 이후 급변하는 목회 환경 속에서 노회원들에게 피로감을 주는 대신, 예측 가능한 안정감을 제공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광주전남노회 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광주전남노회 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2026년 봄, 예장합동 광주·전남 지역 5개 노회의 정기회는 화려한 부흥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낮아짐과 연대, 그리고 본질로의 회귀를 택했다. 사회적 인프라가 붕괴해 가는 지방에서, 교회마저 각자도생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의 손을 맞잡은 것이다. '직분은 권세가 아니며, 노회는 억눌린 자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이들의 선언이, 쇠락하는 지역 사회에 어떤 선한 영향력의 질감으로 구현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