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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동 묘역에 선 기장의 거목들… "5·18 민주 정신, 기억을 넘어 헌법으로"

망월동 묘역에 선 기장의 거목들… "5·18 민주 정신, 기억을 넘어 헌법으로"

한국기독교장로회 전임 총회장들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촉구

"기억은 사람의 가슴 속에 살지만, 사람은 언젠가 세상을 떠납니다.
기억이 기억으로만 머무는 한, 언제든 왜곡되고 지워질 수 있습니다."
(성명서 중에서)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고, 민주화 운동의 험로를 함께 걸어왔던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의 전임 총회장들이 다시 망월동 앞에 섰다.

기장 전임 총회장들이 5.18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국립 5.18 민주묘지 입구인 민주의 문 앞에 모여 있다. 한세민 기자
기장 전임 총회장들이 5.18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국립 5.18 민주묘지 입구인 민주의 문 앞에 모여 있다. 한세민 기자
27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2026년 기장 증경 총회장 수련회'는 단순한 친교 모임을 넘어,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촉구하는 결연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입장… 교단 지도부의 일치된 목소리

27일 오후 2시 30분, 제76회 총회장 김수배 목사부터 제109회 박상규 목사에 이르기까지 27명의 전임 총회장과 이종화 현 총회장(110회), 이훈삼 총무 등 교단 지도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단체로 입장했다.

백발이 성성한 교계의 원로들이 5월의 묘역을 걷는 발걸음에는, 46년 전 총칼 앞에서도 사람의 존엄을 지키려 했던 희생자들을 향한 부채 의식과 신앙적 양심이 배어 있었다.

이종화 총회장, 이훈삼 총무, 서재일 전 총회장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
이종화 총회장, 이훈삼 총무, 서재일 전 총회장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
이들의 결의는 방명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종화 총회장은 "기장 총회는 5.18 정신을 이어가겠습니다"라고 적었고, 이훈삼 총무는 "5.18 정신은 한국 민주주의의 영혼입니다"라며 교단의 확고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2024년의 겨울이 일깨운 진실, "제도화되지 않은 기억은 지워진다"

이날 추모의 핵심은 김은경 전 총회장(제106회)이 대표로 낭독한 성명서에 담겨 있었다. 구약성서 아모스 5장 24절("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를지어다")로 시작된 성명은, 5·18 민주 정신이 아직도 헌정 질서 안에 온전히 새겨지지 못한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특히 이들은 "지난 2024년 겨울 불법 계엄 선포가 우리에게 그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며,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기 위한 궁극적인 방어선이 '헌법'임을 강조했다. 국가 폭력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 정신이 개인의 기억이나 기념일을 넘어, 국가의 최고 규범인 헌법 전문에 명시되어야만 어떠한 정치적 풍파 속에서도 훼손되지 않는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이다.

박상규 목사(제109회)의 선창에 맞춰 원로들이 "5·18 민주 정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수록하라"고 외치고 있다. 한세민 기자
박상규 목사(제109회)의 선창에 맞춰 원로들이 "5·18 민주 정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수록하라"고 외치고 있다. 한세민 기자
이날 선창에 나선 박상규 목사(제109회)와 원로들의 "5·18 민주 정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수록하라"는 구호 제창은 망월동 묘역에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오래전부터 5·18 기념 주일을 제정하고 그 신학적 의미를 정립해 온 기장 총회. 이들이 2026년 봄 광주에서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5·18은 한 지역의 비극을 넘어, 대한민국 모든 세대가 헌법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이어받아야 할 '국가적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하 성명서 전문

5.18 민주 정신, 이제 헌법으로 새겨야 합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흘릴지어다." (아모스 5:24)

우리는 오늘 망월동 묘역 앞에 섰습니다
1980년 5월, 이 자리에 잠든 이들은 총칼 앞에서도 사람의 존엄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들은 이념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그 희생 위에 오늘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서 있습니다.

46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5.18 민주 정신은 아직 이 나라의 헌정 질서 안에 온전히 새겨지지 못하였습니다. 기억은 사람의 가슴 속에 살지만. 사람은 언제가 세상을 떠납니다. 기억이 기억으로만 머무는 한, 5.18 민주 정신은 언제든 왜곡되고 지워질 수 있습니다. 지난 2024년 겨울 불법 계엄 선포가 우리에게 그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제 5.18 민주화운동 정신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명문으로 수록되어야 합니다. 헌법은 한 나라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후대에 남기는 고백입니다. 그 고백 안에 시민의 생명과 본업을 지키기 위해 스러져간 이들의 이름과 정신이 담겨야 합니다. 그래야 5.18은 한 지역의 아품이 아니라. 이 나라 모든 세대가 함께 이어받아야 할 역사가 됩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오래전부터 5.18민주화운동 기념 주일을 제정하고, 그 신학격 의미를 정립하는 일에 함께해 왔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한 우리는 오늘 이 묘역 앞에서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헌법 전문에 5.18 민주화 운동의 정신이 수록되는 그날까지, 교회는 기억하고 발언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망월동의 꽃은 기억하는 자의 가슴에서 피고, 잊는 자의 침묵 속에서 집니다. 우리는 기억하겠습니다.

2026년 4월 27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전임 총회장 일동
김수배(제76회) 백형기(제81회) 강만원(제83회) 윤기석(제86회) 전병금(제87회) 김옥남(제88회) 김동원(제8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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