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석 목사(강남교회, CBS 자문위원) 
한여름의 대지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른 북중미 월드컵 축구대회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수많은 서사와 감동이 교차하는 '축구장 위의 인생극장'이다. 이번 대회 역시 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골문을 흔드는 메시와 홀란, 음바페의 활약으로 연일 화제다. 여기에 이름마저 생소한 카보베르데의 마흔 살 노장 골키퍼 보지냐는 온몸을 던져 골문을 지켜내며 한 편의 '월드컵 동화'를 썼다.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면서도 끝내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한 채 씁쓸하게 퇴장하는 포르투갈의 영웅 호날두는 인생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이번 대회에서 호날두의 마지막 무대는 스페인과의 16강전이었다. 포르투갈의 0대 1 패배로 경기가 끝나자 호날두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고개를 떨군 채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대선배를 찾아와 따뜻하게 안아준 이는 다름 아닌 스페인의 어린 신성, 야말이었다. 야말은 이제 겨우 19세, 호날두는 41세다. 그라운드 위에서 두 세대가 포옹하는 장면을 보며 전도서의 말씀이 뇌리를 스쳤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전 1:4)
한 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가 오는 것, 땅 위의 그 어떤 세대도 영원히 머무를 수 없으며 반드시 새로운 세대가 일어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세상의 섭리이자 이치다. 지금의 세대를 지나가게 하시고 다음 세대를 일으키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다음 세대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종종 불협화음이 일어난다. 미술사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사실적으로 그렸던 고전주의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 마네를 위시한 새로운 화풍의 화가들이 등장했다. 기존의 틀에 익숙했던 고전주의 화가들은 이들을 비평하고 헐뜯으며 밀어내기에 급급했다. 한 평론가는 모네의 그림을 두고 "벽지의 미완성 도안보다 못하다"라며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거대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고전주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발걸음을 막아서지 못했고, 변화하는 흐름을 읽어내지도 못했다. 결국 고전주의는 쇠락의 길을 걸었고, 인상주의가 미술사의 새로운 주역이 되었다. 이러한 대치와 순환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에나 새로운 사람들을 일으켜 당신의 나라를 펼쳐가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다음 세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첫째, 경쟁으로 내몰린 이들에게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라는 격려와 기도를 건네자.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지만, 다음 세대가 짊어진 세상은 기후 위기와 AI의 파도 속에서 더욱 위태롭기만 하다. 그들이 거대한 시대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우리 먼저 그들의 등 뒤에서 든든한 기도의 방파제가 되어주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라고 하셨던 그 축복의 언어처럼, 우리도 그들의 성과가 아닌 그들의 존재를 먼저 축복하는 지금세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둘째, 다음 세대의 가능성에 우리의 보물을 과감히 투자하자 다음 세대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면 기성세대의 안주를 걷어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단순히 재정을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그들의 가능성에 우리의 미래를 '배팅'하는 것이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는 말씀처럼, 우리 교회의 재정이 향하는 곳이 곧 다음 세대를 향한 우리의 진심이 담긴 지도(map)가 되어야 한다.
셋째, 그들이 마음껏 춤출 수 있도록 기꺼이 자리를 열어주자. 역사의 무대는 결코 한 사람의 독무대가 아니다. 누군가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는 조명 뒤편에서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고 판을 깔아 주어야 한다. 이는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라는 더 넓은 항해를 위해 우리라는 돛배를 기꺼이 내어주는 거룩한 양보인 것이다. 우리가 쥐고 있던 주도권이라는 이름의 낡은 밧줄을 풀 때, 비로소 다음 세대는 푸른 바다를 향해 돛을 올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품으시며, 바울을 향해서는 "이방인을 위한 나의 그릇"이라며 사명의 자리를 열어주셨다. 이렇게 세움받은 이들은 믿음의 자리에서 거룩한 날개를 활짝 폈다.
오는 20일이면 월드컵 축구대회의 결승전이 열린다. 과연 누가 그 영광의 그라운드를 누빌지 자못 궁금해진다. 메시나 홀란, 음바페일까, 아니면 무서운 신예 야말일까? 혹은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새벽별 같은 존재일까.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같은 선수들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지만, 그렇기에 4년 뒤 새로운 무대를 채울 다음 주자들이 더욱 기다려진다. 어느덧 필자 역시 다음 세대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자리에 서 있음을 문득 깨닫는다. 한국 교회와 이 시대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다음 세대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이제 우리 모두 기쁜 마음과 넉넉한 품으로,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다음 세대를 맞이하자.